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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자 : 이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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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2023년 일리노이 파견
“사야야, 너 미국 한 번 갖다와볼래?” 서점에서 차를 타고 오는 중에 아빠가 갑자기 꺼내신 말이었다. 미국 교환학생. 평소 인터넷으로 보기만 했던 교환학생(그 당시에 나에게 굉장히 이색적이고 한 번 즈음은 저곳에서 지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한)을 갈수도 있다는 설렘에 바로 “갈래요!”라고 대답했던 게 엊그제 같다. 한국으로 귀국한지 벌써 거의 한 달이 되어가는 와중 지금 이 보고서가 나중에 미국으로 가는 다른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교환학생을 가기로 결심한 이유
교환학생. 누군가에게는 꼭 해보고 싶은 것일 수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일 수도 있다. 나는 전자의 경우였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고 그곳에 언젠간 꼭 가보겠다는 목표가 있던 나에겐 미국에서 1년이라는 시간동안 현지 고등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정말 나의 머리를 교환학생을 가겠다는 마음으로 사로잡았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익숙한 환경을 떠나 완전히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두려움보다 교환학생이라는 이름이 두근거림이 더 컸던 것 같다.
교환학생을 준비하는 과정
나뿐만이 아니라 교환학생을 가는 모든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영어가 어느 정도 될 것이다. 특히나 영어 면접과 ELTIS 시험도 통과하려면 말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영어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교환학생을 가기로 결정한 날은 기말고사 1주일 전이었으며 필요한 서류를 기말고사가 끝나고 3일 안에 준비를 다해서 제출을 하는 것은 상당히 정신없는 일이었다. 나중에 가서 ELTIS라는 시험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절망했다. 그 당시 나의 ELTIS 모의시험 점수(인터넷에 ELTIS 시험이라 치면 나오는 가장 상위에 있는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는 8/16 정도로 실제 ELTIS 시험에 통과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중학교 안에서는 나름 영어를 하는 줄 알고 지내왔던 나는 처음으로 ELTIS라는 시험 앞에서 내 실력을 보고 충격을 많이 먹었었다. 시험까지는 1달. 나는 내 부족한 실력을 그때까지 어떻게든 끌어올려야 했다. 당연히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정말 영어에만 매달렸던 것 같다. 워드 마스터 수능 2000을 사서 외우고(그 당시 나에게는 모르는 단어가 정말 즐비했다) Reading Expert라는 장문형 문제집을 1권부터 5권까지 풀었다. 다행히 ELTIS는 잘 넘어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한 건 코로나였다. 중3 때 교환학생을 가기로 한 이후 나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 사이에 코로나로 인해 교환학생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고등학교 공부에 신경을 썼었다. 가기 약 6주 전 즈음에 확답을 받은 뒤에 본격적으로 교환학생을 가기 위한 준비를 하게 되었다.
교환학생 시작
교환학생을 가게 되는 날 공항.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일본 남자애랑 같이 지내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갑작스러웠다. 그래도 혼자인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공항에서 가족들과 작별인사를 했다. 솔직히 말해서 눈물은 안 났다. 영원히 헤어지는 것도 아니지만 무엇보다 이 상황이 그냥 믿겨지지가 않았다. 비행기를 타서 시애틀 타코마 공황에서 내린 뒤 그곳에서 5일 동안 4-H랑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 집에서 지냈었다. 그 시간동안 시애틀의 여러 장소를 둘러보았는데 정말 하나같이 모두 예뻤다. 이게 미국이구나 생각했다. 5일의 시간 뒤 나는 내 진짜 호스트 패밀리가 있는 지역으로 이동했다. 시애틀에서 시카고를 거쳐 피오리아 공항에서 내렸다. 호스트 가족분들을 만나고 집에 처음 갔을 때 솔직히 나는 약간 실망했었다. 너무 시골이었다. 소, 말, 양, 닭, 오리, 거위, 개, 송아지를 키우셔서 그로인한 냄새가 내 코를 쑤셨다. 정말 당황스러웠고, 솔직하게 말하면 싫었었다. 주변에 보이는 풍경은 끝이 안 보이는 들판. 그곳에 내가 살던 동네처럼 집이 있다거나 음식점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나를 행복하게 한 일
모든 것이 다 달랐다. 학교 건물, 복도에 보이는 친구들, 교재, 학교 동아리 등 다 새롭고 낯선 것들이었다. 미국에 가서 비록 스포츠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많이 할 수 있었다. Marching band, Pep band, Jazz band, Wind ensemble, Madrigal dinner, Musical, Robotics. 한국에서는 고등학교 때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동아리들이 많았고 그 안에는 열정적으로 하는 아이들이 모여있었다. 이 모든 활동들은 미국에서 지내는 1년 내내 내가 힘들때마다 나를 지탱해준 원동력이 되주었다.
해주고 싶은 말
사실 들려주고 싶은 나의 이야기보다는 미국에 가기 전에 알고 갔으면 하는 것이 더 많다.
1.
호스트 가족에 대한 어떤 기대도 하지 말라
a.
호스트 가족분들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호스트 가족 분들에 대해 우리는 우리의 생각 속에서 최고의 모습을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호스트 가족분들은 생전 처음 보는 애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 채 1년이란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이는 자기자신에게도 그 가족분들에게도 쉽지 않다. 호스트 가족에 대한 최고의 모습을 상상하여 갔을 때 괴리감에 실망하는 것보다는 한국에 있으면서 최대한 어떤 모습이든지 수용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전혀 다른 세상. 그곳에서 1년을 지내려면 싫다고 꺼리고 안 하려는 마음은 오히려 1년이라는 헛되게만 할 뿐이다.
2.
겁먹지 말자
a.
학교에 처음가면 당황스러울 것이다. 학기 초반에는 한국 학교보다 훨씬 커서 수업 하나를 찾아가는 데 길을 많이 잃었었다. 복도에 지나다니는 친구한테 물어봐도 걔가 내 말을 못 알아듣거나 걔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어서 겁먹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겁먹지 말았으면 한다. 어차피 1년이다. 정말 냉정하게 아무리 그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도 1년 딱 되면 다시 돌아와야 한다. 싫은 친구, 좋은 친구 할 거 없이 1년이면 끝난다. 겁먹어서 나중에 후회하는 것보다는 1년 동안 겁이 없는 것처럼 살아보자. 물론 공격적으로 말을 하라는 게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긴장되는 상황을 극복하자는 것이다.
3.
다양한 활동에 도전해보자
a.
단순히 싫어한다고, 안 좋아한다고 해도 도전해보자. 학교에 내가 관심이 있는 클럽이 없어도 한 번 아무 클럽이나 들어가보자. (클럽에 대한 정보도 모른 채 들어가라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어도 한 번 도전해보다는 이야기다.) 나의 경우 친구가 몇 번 로봇 동아리에 들어오라고 했었다. 로봇을 만들고 프로그래밍해 대회를 하는 모습에는 딱히 관심이 없어 거절을 했다. 하지만 어느 날에 그냥 아무 생각없이 들어가봤다. 얘들이 그 안에서 의견을 공유하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실제로 내가 다닌 학교 로봇 동아리는 실력이 좋아서 내가 있던 시즌에 세계대회로 휴스턴-텍사스주에 있는 대도시(나사(NASA)가 유명함)로 가기도 했었다.
4.
문화 충격은 일시적인 게 아닌 지속적으로 1년 내내 느껴진다.
a.
정말 왜 그렇게 생각을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미국에 가면 와!하고 놀란 뒤 다 잘 적응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실제는 1년 동안 내가 살아온 환경과 다른 환경에서 지내며 잔잔히 그리고 1년 내내 겪는 게 문화 충격이다. 이 문화 충격은 놀라운 것일수도 아니면 나는 힘들게 하는 충격일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