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 어귀에 서 있던 4-H표석의 기억은, 내게 새마을운동과 농촌 지붕 개량의 이미지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고흥도화중 정쌍선 선생님과의 인연으로 학교4-H의 세계를 알게 되었고, 점암중앙중으로 전근한 후에는 최정란 선생님과 함께 화단과 텃밭을 가꾸며 학생들과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는 시간을 보냈다. 학생들은 직접 기른 채소로 전교생이 함께 삼겹살 파티를 하며 자연과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런 활동은 4-H경진대회 입상으로도 이어졌다.
이후 4-H지도교사 연수를 통해 전국의 열정 있는 선후배 교사들과 교류하며, 4-H의 가치를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S4-H협력 청소년 미국 파견 프로그램 인솔지도교사 모집 공고를 보았고, 영어교사인 나는 도전하게 되었다. 2024년 여름, 아이다호주에 파견된 14명의 학생을 이끄는 인솔지도교사로 활동하였고, 올해도 그 영광을 이어받았다.
첫 해에는 아이다호 사막 지역의 호스트 가정에 머물며 로컬 마켓, 파머스 마켓 운영 등 다양한 현장을 체험했고, 한국 음식을 직접 요리해 소개하는 기회를 가졌다. 호스트 파더가 예전에 한국에 근무한 경험이 있어 한국 문화에 대한 애정도 느낄 수 있었다.
올해는 오레곤 뉴포트로 배정되어 해변가에 인접한 쾌적한 환경에서 지냈다. 22개월 된 아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된 호스트맘은 겉모습은 한국인이지만 한국에 대해 거의 몰랐기에, 나는 김밥, 잡채, 라면 등을 함께 만들어 먹으며 문화를 소개했고, 한글도 가르쳐주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의자매를 맺고 가족 같은 정을 쌓았으며, 양어머니와도 진한 교류를 나눴다.
또 다른 인상 깊은 가정은 자녀 9명을 키우며 한국과 일본 학생까지 호스팅한 오레곤의 가족이었다. 그들은 친구를 초대한 ‘thanksgiving 파티’와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가족애와 공동체 문화를 보여주었고, 나는 잡채와 호박전으로 답례하며 한국 문화를 나누었다.
4주의 여름 동안, 미국 가정에서 가족의 일원으로 지내며 나눈 대화와 일상, 정서적 교류는 단순한 문화체험을 넘어선 진한 인연이었다. 교직 생활의 끝자락, 나는 운 좋게 고향 조성중학교에서 근무하게 됐고 이곳에서도 4-H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학생들과의 봉사활동, 지역과의 연대를 통해 교육의 본질을 되새기며, 인솔지도교사로서의 경험은 내게 소중한 가족을 두 번 더 만들어준 값진 시간이었다.
그 여름, 청소년들과 함께한 교류의 시간은 앞으로 이들이 꿈을 펼쳐나가는 데, 어떤 길잡이가 될지 상상만으로도 가슴 벅차고 뿌듯하다.